2018 비교과 우수 후기 공모전(한·중·베 역사탐방)
- 작성자 정희도
- 작성일 2019-02-14
- 조회수 3392
상명대학교 한·중·베 역사탐방 추천서
백제 수호의 길목: 공주 - 공산성
학교에서 출발해 공주에 도착한 후 중식을 먹고 조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바로 ‘공산성’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조원이 ‘공산성’에 처음 와 본 것이었다. 덕분에 첫 탐방의 어색한 공기를 공감대 형성을 통해 쉽게 무마할 수 있었다.
‘공산성’에서의 탐방은 약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11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6조는 한국학생 5명, 중국유학생 3명, 베트남유학생 3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두 한국어로 대화가 통하긴 했지만 첫 만남에 친해지기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배려심 깊은 팀장과 처음 보는 팀장을 믿고 따르는 팀원들 간의 교류가 잘 어우러졌다. 덕분에 처음 ‘금서루’를 지나서 들어갈 때와 다시 나올 때의 분위기는 꽤 많은 차이가 있었다.
탐방 도중에 ‘임류각’에서 경희대학교 ‘조복현’ 교수님의 ‘공산성’에 관한 설명이 있었다. 교수님께서 해주신 설명은 우리가 평소에 알던 사실과는 차이가 조금 있었다. 사실 고등 교육과정에서의 백제의 역사는 크게 다루지 않기도 하고, 역사란 승자의 입장에서 쓰이기 때문에 삼국시대 때 패전국인 백제에 대한 공부는 많은 비중을 두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 하지만 역시 그 장소 그대로 보존되어온 역사를 설명 듣고 나니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있었다.
탐방을 가기 전 며칠간의 폭우로 ‘공산성’ 옆 ‘금강’의 풍경은 평소 알려졌던 절경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와 역사유적 안에서의 조화 속에서 바라본 그 풍경마저도 아름다워 보였다.
고대 백제 유물의 보고: 공주 - 송산리 고분군
다음으로 찾은 곳은 ‘송산리고분군’ 이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무령왕릉’이 있는 그곳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유명세와 달리 볼거리가 너무 적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싶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탐방 시간표를 받았을 때 가장 기대했던 곳이 바로 ‘송산리고분군’ 이었으나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
‘송산리 고분군’은 피장자가 확인되지 않은 6개의 고분과 7호분인 ‘무령왕릉’으로 이루어져있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송산리고분군’의 고분 7개 모두 현재는 입장이 불가능하며 내부구조와 발굴 유물 등의 모형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이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모형이지만 내부의 웅장한 구조와 화려한 유물들을 두고 실재하는 내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은 더욱 커졌다.
‘무령왕릉’ 의 주인인 무령왕은 동성왕의 둘째 아들로서 이름은 사마 또는 융이며, 백제의 25대 왕이다. 무령왕이 왕위에 올라있던 그 시기에 백제는 공주로 천도 하였는데 그 시기를 효과적으로 수행하였다고 한다. ‘무령왕릉’은 1971년 송산리 5, 6호 고분의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령왕릉’은 피장자가 분명한 고대의 무덤이라는 점과 피장자가 백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훌륭한 군주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처음 ‘송산리고분군’에 도착해 탐방을 시작하기에 앞서 박물관에서 일하시는 가이드분의 설명이 있었는데 혹여나 유학생들이 알아듣지 못할 경우를 우려해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설명해주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공산성’에서도 교수님께서 ‘송산리고분군’에 관한 설명을 해 주셨다. 같은 내용을 다룬 설명이었지만 교육의 목적과 관광의 목적을 토대로 이야기함에 따라 이야기의 비중이 조금씩 바뀌는 점도 재미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해주신 두 분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당시 백제의 국제성이었다. ‘무령왕릉’과 그곳의 출토유물을 통하여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교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백마강에 서린 나라 사랑의 꽃 : 부여 - 부소산성
9월1일 토요일, 아침식사를 하고 단체티를 입고 ‘부소산성’으로 향했다. ‘부소산성’ 입구에서 가이드 분의 설명 이후 ‘조복현’ 교수님의 부가설명을 듣고 낙화암으로 향했다. 모든 인원이 동시에 출발했지만 도중에 뒤쳐진 덕분에 ‘부소산성’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이 날은 기온과 습도가 굉장히 높았는데 힘들게 산을 올라 ‘낙화암’ 절벽 위 ‘백화정’에 도착하니 탁 트인 절경과 시원한 바람이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졌다. ‘낙화암’은 의자왕의 3천 궁녀가 몸을 던진 곳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이 있었다. 또한 가이드분께서 의자왕이 실제 백제 멸망 직전 5년을 제외하고는 훌륭한 군주였다고 하셨다. ‘조복현’ 교수님께서는 나라가 멸망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이 무능한 군주, 나당 연합군과 같은 연합세력, 간신 이라고 하셨다. 두 분의 설명에서의 공통점은 결국 의자왕은 무능한 군주였다는 사실이다. 분명 의자왕도 훌륭한 업적이 있고 이는 인정해야 할 부분이지만 한 나라를 망하게 한 군주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무능한 군주를 섬기면서도 백제 멸망 당시에 낙화암 아래로 몸은 던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궁녀들은 충신으로 인정하고 싶다. 낙화암 위에 있는 ‘백화정’도 이러한 백제 여인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부풍시사 라는 시모임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오전 탐방 시간이 종료 되고 중식을 먹으러 가야 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다른 많은 사적을 눈에도 담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픈 역사를 문화 창조로 승화시키다 : 군산 - 근대역사박물관 및 거리
중식을 먹고 간 곳은 ‘군산근대화거리’였다. 군산은 사실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한국인인 나조차도 ‘군산근대화거리’의 존재를 몰랐다. 기대를 적게 해서인지 거리에 놓인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품 같았다. 특히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취지가 너무나도 좋았던 것 같다.
‘군산근대화거리’에 위치한 ‘구 일본18은행’, ‘구 조선은행’을 방문하고 이후에 ‘진포해양테마공원’을 갔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진포해양테마공원’ 탐방은 각 조 자유 탐방으로 진행했는데 ‘위봉함’에 꼭 가보고 싶었던 나는 조원들을 설득해 모든 구조물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역시 ‘위봉함’ 이었는데, ‘위봉함’은 인천상륙작전 당시 실제로 쓰였던 군함이다.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실제 군함 내부 구조를 기대했는데 고려 말 진포대첩의 승전을 기념하며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를 떠오르게 외부의 웅장함과는 달리 내부는 다른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위봉함’ 내부에는 4D 영상관도 있었는데 시간 관계상 관람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또한 야외전시장에도 많은 군용 장비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모형인 줄 알았지만 모두 실제 사용되었던 장비라고 했다.
다음으로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가서 1층에 있는 해양물류 역사관을 관람하고 3층에 근대생활관을 갔는데, 근대생활관에서의 경험이 엄청 새로웠다. 기존에 많은 박물관들과는 다르게 직접 근대생활을 체험해볼 수 있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의상을 빌릴 수도 있고 다양한 근대 신발을 신어볼 수도 있었다. 조원들이 함께 다니며 다양한 체험을 겪고 나니 유학생들뿐만 아니라 한국학생들의 즐거운 기분도 감출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군산세관’을 갔는데 아쉽게도 휴관일이어서 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와야 했다. ‘군산근대화거리’에서는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군산시간여행축제를 진행하는데 시간이 된다면 꼭 한 번 가서 다시 구경하고 싶다.
선열의 희생이 선진 조국의 밑거름이 된 곳 : 천안 - 독립기념관
마지막 날 탐방지는 ‘천안 독립기념관’ 이었다. ‘천안 독립기념관’은 이름 그대로 일제 강점기에 독립 투쟁의 역사를 기록한 곳이다.
1982년 8월 31일 성금을 시작하여 600여억 원의 국민성금이 모아졌고, 1987년 8월 15일에 완공되었다. ‘독립기념관’ 내부에는 ‘태극기 광장’, ‘겨레의 탑’, ‘겨레의 집’ 과 7개의 전시관 등이 있다.
시간이 한정적이어서 모든 곳을 다 돌아보지 못하였다. 우리 조는 ‘태극기 광장’, ‘특별기획전시실’ 를 갔다. ‘특별기획전시실’ 에서는 일제 강제동원 ‘기억을 넘어 역사로’ 라는 광복 73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을 진행 중인데 올해 11월 25일 까지 진행 예정이다.
‘독립기념관’ 에서의 탐방은 한국인인 나로서는 울컥하는 탐방이었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관련해서는 하루 빨리 일본 측이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 피해자에 대한 진실한 사과와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국가 대 국가로 문제를 회피하려는 시도 자체가 답답할 노릇이다.
현재 생존 피해자 할머니들은 올해 7월 기준 28분, 평균 연령은 91세라고 한다. 문제가 제기된 이후로도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많은 할머니들이 별세하셨고, 앞으로 남은 할머니들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디 하루 빨리 일본 측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를 했으면 좋겠다.
총 5군데의 탐방을 끝으로 우리의 일정은 끝이 났다. 마지막 일정이 천안에서 이루어 졌기에 조별로 버스를 타지 못하고 행선지에 따라 나뉘어 타게 되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너무도 많이 친해졌고 그만큼 헤어지기 아쉬웠다. 2박 3일간의 일정을 통해서 유학생 친구들과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아주 특별하고 유익한 시간 이었던 것 같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모든 탐방을 시간표에 맞추어 시행하다보니 여유로운 탐방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다시금 방문을 하고 싶게끔 하는 동기가 생긴 것 같다. 또 마지막 탐방이 천안 독립기념관이었는데, 독립기념관에 대해서도 조원들과 토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다.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추억을 쌓았고 지식을 얻었다. 언제고 기회만 된다면 꼭 다시 참여하고 싶다.